어릴 때 본 만화 영향…헬멧 쓰고 방호복 입는 시대 대비 에어필터 산업 뛰어들어
|
세명하이트주식회사 창업자 고원영 고문 |
“코로나19로 소비가 전체적으로 줄어들었어요. 에어필터는 마스크에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후발주자로 들어가기가 뭐해서 안 들어갔어요.”
코로나19로 마스크 업계가 대박이 났는데 세명하이트도 마스크산업에 진출했느냐는 물음에 탄현일반산단에 입주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의 하나인 세명하이트주식회사 창업자 고원영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
세명하이트주식회사는 1997년 설립된 업체로 산업용,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의 필터를 제조하는 강소기업 인증 기업이다. 에어필터는 공기 중의 오염물질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마스크에도 사용이 가능하고, 공기청정기, 에어콘, 냉장고(김치, 일반), 신발장, 자동차 등 사용범위가 넓다.
세명하이트주식회사 창업자인 고원영 고문을 지난 11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탄현산단 세명하이트 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고원영 고문은 필터 업계의 대부로 통한다. 고 고문과의 인터뷰 자리에는 김성권 탄현지방산업단지 관리소장이 함께 했다.
세명하이트의 2019년 매출액은 363억원, 순이익은 17억원이었다. 2018년도에 매출액 279억원에 순손실이 약 16억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다.
“리스크 없이 사업을 할 수는 없어요. 2018년에 적자가 난 것은 중국에서 클레임이 걸려 36억원 정도 손해를 봐서 그래요.”
고 고문은 담담하게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
“세명하이트는 파주의 자랑거리예요. 흡연독성물질을 차단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 흡연부스에도 들어가는 친환경사업을 하고 있어요. 국회의원도 와서 제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그래요. 고 고문님은 업계에서 필터에 대해서는 자문역할을 하고 계실 정도로 권위자이세요.” 김성권 소장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1997년 설립된 세명하이트는 그해에 웅진코웨이와 공기청정기 필터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2001년도에는 일본 노무라, 쿠라레이 등과 판매 대리점 계약을 체결한다. 2003년에는 ISO 9001인증을 획득하고, 2005년에는 특허청에 ‘필터’ 실용신안 등록을 한다. 2007년에는 활성탄 충진, 니들펀칭, 프레스, 계측, 각종 시험기기 등 37 종에 대한 설비 자동화를 완료한다. 2009년에는 기술 혁신형 중소기업 INNO-BIZ와 벤처기업인증서를 획득한다. 2012년에는 경기도지사로부터 유망중소기업인증서를 획득하고, 지식경제부장관으로부터 부품/소재전문기업 확인서를 획득한다. 2013년도에는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로부터 2013년도 ‘취업하고 싶은 기업’에 선정되고, ‘환경경영부문’ 2013년 중소기업경영대상을 수상한다.
“미세먼지를 제거해 사람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제품을 생산하려고 하고 있어요.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늘 연구하고, 미래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고원영 고문은 나이가 들면 체력, 정보에서 뒤떨어지고 궤변가가 된다면서도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걸 받아들여서 밑에 있는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만들어줘야 해요.”
그는 산업의 트렌드를 진단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어떤 산업이든 시장은 커지는 반면에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경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품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제조공법을 바꿔야 하고,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는 자동화를 해야 합니다. 자본 없고, 경쟁에 취약한 중소업체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세명하이트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2018년, 2019년 자동화 설비에 2~30억 원을 투자했다.
“인원을 감축하지는 않았어요. 그동안은 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는 야근이나 초과근무 같은 잉여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동화설비에 투자했어요. 사용주와 피고용자가 협의해서 임금을 결정합니다. 정부가 법을 많이 만들면 걸리는 게 많아요. 그렇게 되면 비용 절감을 위해 2차 3차 설비투자로 갈 수밖에 없어요.”
세명하이트의 정식 직원은 현재 61명이다. 여기에 기술직과 자동화설비 설치를 위해 외부에서 파견 나와 있는 직원까지 합하면 110명이 일하고 있다.
“앞으로 미세먼지 때문에 가정용 공기청정기 시장이 열리게 되면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중소기업은 납품업체와의 관계, 자금난 등등 늘 위기감 속에서 살아요. 그래도 기회는 무궁무진합니다.”
에어필터 업계에 뛰어든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고원영 고문은 흥미로운 답변을 했다.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봤어요. 초등학교 때 미래에는 공기가 오염돼서 일상적으로 헬멧 쓰고 방호복 입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는 만화를 봤어요. 그 당시는 그게 공상이었지만 지금은 다 맞아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고 고문은 가장 좋아했던 만화에 대해 묻자 두 사람을 들었다. 김산호 작 ‘라이파이’와 김경언 작 ‘삐빠’.
김산호 선생의 라이파이는 너무도 유명한 작품이라 기자도 안다고 하자 서로 나이를 물어가며 한 참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라이파이는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42권으로 발간되었는데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 3세와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녹의여왕과 라이파이’ 등 여러 시리즈가 있었다.
김산호 선생은 1939년 만주에서 출생, 부산과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극장 간판을 그리며 학비를 벌었다. 1957년 서라벌 예대 입학, 같은 해 잡지 ‘만화세계’에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1959년 본격적으로 산호라는 필명으로 라이파이 시리즈를 발표하게 된다. 이 만화의 폭발적인 인기로 산호는 당시 최고의 인기 만화작가 중 한사람이 된다. 20대 초반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그는 성공된 미래와 부를 버리고 미국으로 새로운 도전을 떠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한국의 전설을 소개한 동양적인 만화로 한국적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김산호 선생은 현재 한국에 돌아와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연구, 후진양성, 작품활동 등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김경언(경인) 선생은 한국의 1960년대 어린이만화를 대표했던, 만화방시대의 최고 인기작가였다. 서울대 재학시절 이미 만화작가로 데뷔한 선생은 무궁한 만화적 발상력에다 천부적인 속필 속화 능력까지 갖춰 한국만화사상 가장 ‘손 빠른 작가’로 작가 한 사람의 힘으로 만화를 창작하기로는 전대미문의 다작기록을 남겼다.
전성기시절인 1960년대 중반, 100쪽 짜리 만화책을 하루 평균 1-2권을 그려, 한 달이면50-60권의 만화를 찍어냈다. 선생은 10여 년에 불과한 창작기간 동안 약 500타이틀의 어린이만화를 발표했다. 총 발행 권수로 따지면 5,000권에 육박한다는 것이 당대 동료작가들의 증언이다. 그가 창작해낸 ‘의사 까불이’ ‘용가리’ 등 명랑 만화는 하나같이 당시 최고의 인기작으로 꼽혔다.
“삐빠는 로봇 만화예요. 로봇이 인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악당을 물리치는 이야기예요.”
고원영 고문은 세계경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요즘에는 소비자의 취미, 환경까지도 사업요소가 됩니다. 자동화가 돼서 일자리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역할분담을 잘해 파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와 사업화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노인들은 병원 갈 때 혼자가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병원에 같이 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든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정식 직원을 두기 어려운 회사에 물건 납품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든가 여러 사람의 다양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21년 세명하이트주식회사는 또 한 번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해외무역을 위해 미국의 한 업체, 중국의 한 업체와 협상 중에 있는 것.
“미국, 일본, 중국의 시장규모는 우리나라의 시장 규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큽니다. 내년에는 이들 시장을 뚫어보려 합니다.”
힘차게 내년도 포부를 밝히는 고원영 고문의 얼굴에서 세명하이트주식회사가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훨훨 날아오를 그날이 바로 2021년이 되리라는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