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성장기까지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행사와 시설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5.16혁명 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후진국형 각종 시설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설과 행사들로 대체되고 있다. 그 일부를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① 상여와 상여집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마을사람 모두 문상을 하고 친인척과 친지들도 멀리서 찾아와 문상을 한다. 장례는 3일장이 일반적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은 상여를 타고 떠난다. 개울이나 언덕을 지날 때는 상여를 세워 상주들이 노잣돈을 놓고 절을 해야 떠났다. 이런 상여가 모두 사라졌다.
② 사물놀이와 기구
마을마다 북, 장고, 징, 꽹과리, 돌무들을 갖추고 있었다. 명절엔 마을을 돌며 즐겁게 놀던 행사와 기구도 모두 사라졌다.
③ 가마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신부집으로 갈 때 태우고 가던 기구로 먼 길을 갈 때는 요강도 준비하여 떠났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④ 소달구지
소가 끌고 다니는 짐수레로 우차, 우마차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삼륜화물차가 보급되면서 세상에서 사라졌다.
⑤ 원두막
한여름 무더위를 피하면서 농가에서 수확한 여름과일을 팔던 곳으로 구불구불한 나무기둥을 네귀에 세우고 2층에 마루를 깔고 그 위에 지붕을 씌워 그늘을 만들어 임시거처 하며 농산물을 판매하던 길거리 가건물이다. 지금은 고급화된 이동식 조립식 건축물로 변해 농가나 휴양지등에 보급되고 있다.
⑥ 우물(샘)
수도 시설이 보급되기 전까지 수백 수천년 동안 집집마다 물을 공급하던 필수시설이다. 마당에 10m~20m 정도의 깊이로 파고 돌을 쌓아 솟아오르는 물을 가둬두던 샘물이다. 지하수 펌프가 보급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⑦ 청색전화
일반인들이 전화를 생활필수품으로 사용하기 이전에는 부자들이 사용하는 백색전화가 있었는데 매매가 가능한 고가의 전화였고 중산층이 사용하던 전화가 청색전화였다. 청색전화는 매매가 되지 않아 필요 없을시는 전화국에 반납하는 일종의 대여용 전화였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가 특별배달하던 제도이다.
⑧ 전보
전화가 없는 가정에서는 편지가 대중적인 소통수단이었다.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편지로는 안되고 전보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휴가제도가 없었던 군대에서도 부모가 위독하다거나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으면 휴가를 다녀 올 수 있는 통신 수단이었다.
⑨ 벤또(辨當)와 책보(冊褓)
밥과 반찬을 담는 4각형으로 된 그릇으로 학생들의 필수품이다. 4교시가 시작되기 전 조개탄 난로위에 가득 높이 쌓아놓고 수업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일본 말이지만 1990년대까지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보통 말이었지만 학교급식제도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책보는 가방을 구입하지 못하는 서민층에서 사용하던 보자기로 학교에 갈 때도 책과 벤또(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때가 있었다.
⑩ 버스 안내양 (여차장)
운송수단이 다양해지기 전엔 유일한 장거리는 물론 도심을 운행하는 운송수단으로 버스가 보급되면서 승하차 안내는 물론 요금을 받고 출발 하차를 돕던 버스 도우미가 있었다. 밀려드는 손님이 다 타면 문을 닫으며 “오라잇”하고 소리를 질러야 운전사가 출발하는 실질적인 버스운행 관리인이었지만 운수수단의 발달로 모두 직장을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