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측 맨처음이 정용구 논설위원
봄이 오는가 싶어 눈을 떠보니 화사한 철쭉이 울긋불긋 강산에 드리워지고 여기저기 담장에 뜨락에 서 있던 꽃무리가 예쁘기도 하더니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봄도 가버렸다.
오늘 밤이 지나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있는 가정의 달 5월이 되니 부모님 생전에 못 다한 불효 불충한 일들 생각으로 그리움에 젖는다.
세상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법치가 무너지고 인륜 도덕성(人倫 道德性)이 무디어져서인가? 선망(羨望)의 대상자 생명의 화신(化神)이었던 의사마저도 돈의 노예가 되어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어디 한 곳이 온전한 곳이 없다.
가르치고 배우며 순종하고 섬기면서 사랑과 용서와 포용을 중히 여기는 공동체였던 옛 시절이 그리워진다. 얼마 전에 부모명의 재산을 차지할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후 시신을 그대로 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체포된 아들, 자기가 낳은 갓 태어난 핏덩이 아기를 양육하기 싫어서 엎어놓아 숨지게 한 젊은 어미의 살생 등 동물 세계에서도 과히 볼 수 없는 인륜(人倫)과 천륜(天倫)을 져버린 충격적이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계속 발생되고 있다.
펠리컨(Pelican)이라는 새는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먹인다. 병에 걸려 죽어가는 새끼에게는 자신의 핏줄을 터트려 그 피를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 인간들에게 애잔한 충격을 준다. 자기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모성애가 강해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犬)는 새끼를 낳으면 새끼의 똥오줌을 모두 핥아서 먹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강아지들은 항문과 요도가 막혀 죽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는 자신의 젖이 떨어져 새끼들이 밥을 먹을 때까지 새끼들의 똥오줌을 어미가 모두 핥아 먹는 것이다. 펠리컨이나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사회 구석구석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이 모든 악성 종양들의 증가는 바르지 못한 정치부산물로 정치가 마땅히 책임져야 하고 마땅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많은 이흥렬(李興烈) 청년이 모진 가난 속에서도 음악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피아노가 없으면 작곡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서야 알고 어머니께 편지를 쓰게 된다. "어머니 송구한 말씀이오나 소자는 음악공부를 이만 접고 귀국하려고 합니다." 아들의 귀국을 불허한 어머니는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다음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동네 산이란 산을 모조리 뒤져서 두 손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쉼 없이 솔방울을 주어 모았다.
불쏘시개로 화력이 좋은 솔방울을 팔아 거금 400원(1930년대 쌀 한 가마니 13원)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고,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로 작곡한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이흥렬 작곡 양주동의 작시(詩) "어머니의 마음" 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 이 없어라
찔레꽃 피는 오월이면 시골길 섶 마을 울타리에도 가냘프고 소박한 하얀 찔레꽃잎을 소재로 한 고향의 정을 품어내는 노래가 있다. 가수 이연실이 청아한 음색으로 부른 "찔레꽃"이 생각난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요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하던 시절에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식과 가정을 위해 피눈물 나는 노동력에 고진감래하는 고달픈 생존으로 이슬처럼 살다 갔다. 헐벗고 굶주리며 처절하게 살다 가신 그 시절 선현들의 넋에라도 진실로 감사함을 드리고 싶다.
오월 어버이날을 맞아 생전의 부모님의 정이 끝도 없이 밀려와 회한(悔恨)과 그리움에 "아 부지! 아 부지! 어 무이! 어 무이" 하고 불러 보는 애환(哀歡)의 심정은 필자만의 감성(感性)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