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는 길은 또한 가야 할 곳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이 세상 넓고 넓은 인생이라는 노상 위에서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 자유와 평화로운 공존의 동행자로 유한의 생애를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인생이란? 상대적 관계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기쁨도 눈물도 있게 된다. 물론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언제쯤 그날이 오게 될지 모르지만 저마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행복한 인생이 되고 싶어 갈망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동독인 270만 명이 자유를 찾아 서독으로 이주했다. 그런 서독행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던 1954년.
강보(포대기)에 싸인 어린 딸을 안고 묵묵히 반대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었다.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1926~2011) 목사의 가족이 그들이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겨우 6주된 신생아가 있었다. 그 어린 신생아를 안고 일정한 거처도, 교회도 없는 머나먼 동독을 향해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올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없는 불모지인 공산국가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카스너 목사는 예수처럼 더 낮은 곳을 향해가는 것이 하나님의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고난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공산치하 동독으로 갔던 그 어린 딸은 아버지의 엄격하고 철저한 신앙생활을 지켜보며 자랐다. 수학과 언어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그녀는 동독에서 물리학자로 활동했고 동·서독이 통일된 후 정치에 참여하여 환경부 장관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독일 총선에서 총리로 선출된 후 2017년, 내리 4선에 성공하였다. 소박한 동독의 시골교회에서 자란 그 소녀가 지난 18년간 통일 독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해 왔다. 그 여인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친숙했던 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이다.
양자역학(물리학의 중요 부분)을 전공한 물리학 박사인 메르켈 전 총리는 G7 국가 중 유일한 이공계 출신 총리이다. 메르켈 총리로 재직하던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건의 비리도 없었다. 그녀는 어떤 친인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도 않았고 위엄 있는 지도자인 척하지도 않았고 앞섰던 총리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랬던 메르켈 전 총리는 18년을 지켜온 총리직을 떠났다. 일찌감치 예고해 놓고 있던 일이다. 그런 예고가 있었던 날, 독일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집 발코니로 나와 그녀의 하차를 아쉬워했을 뿐 나팔소리, 북소리도 하나 없었고 글로리 메르켈(메르켈에게 영광)을 외친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참으로 조용히 작별을 예고했을 뿐이다.
그녀는 또 총리로 재직한 18년 동안 한 번도 명품을 걸친 적이 없었고 고급 주택, 고급 자동차, 고급 요트 및 전용 비행기도 산 적이 없었다.
어느 날 기자회견이 있었을 때 그런 그녀에게 어느 기자가 물었다.
“우리는 총리님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옷이 없습니까?”
그녀는 대답하기를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 회견에서도 한 기자가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도우미가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남편과 저는 매일 집안일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다시 물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저는 세탁물을 챙기고 남편은 세탁기를 돌립니다. 세탁은 대부분 무료전기를 쓸 수 있는 밤에 합니다. 우리 아파트와 이웃 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 밤에 해도 이웃에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다른 일반 시민들처럼 평생 동안 평범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가 되기 전에도 그 아파트에 살았고 총리가 된 후에도 그 아파트에서 산다. 물론 별장, 수영장, 정원, 하인도 없다.
우리도 과연 이런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까? 있다면 언제쯤 그날이 올까?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