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은 늙지도 쉬지도 않는다. (정용구 논설위원 칼럼)
  • 인생은 무상(無常)해도 세월은 간다.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크리스마스 트리에 성탄 축하 음악이 울려 퍼진다. 정치 오물에 끼얹혀 수많은 날을 고달피 견뎌내는 선민(鮮民)들의 아픔을 위로라도 하듯 징글~벨 징글~벨 썰매를 타고 가는 소리가 정다워 그나마 지친 영혼(靈魂)들이 작은 안식(安息)을 얻게 된다.

    세월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다. 1년, 1주일, 1일, 1분, 1초 그 속에 인생은 거침없이 잘도 간다. 숫자로 보면 끝도 없는 무궁한 세월에 짧디 짧은 찰나(刹那)속에 어쩌다 길어봐야 100년을 겨우 채울까말까 하는 처지가 인생이다.

    우리가 흔히들 많다는 수가 ‘억(億)’이라는 숫자이지만 알고 보면 훨씬 더 큰 수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억의 만 배가 ‘조(兆)’, 조의 만 배가 ‘경(京)’이라는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다. 경의 만 배를 ‘해(垓)’, 해의 만 배를 ‘자(秭)’, 자의 만 배를 ‘양(壤)’, 양의 만 배를 ‘구(溝)’, 구의 만 배를 ‘간(澗)’, 간의 만 배는 ‘정(正)’, 정의 만 배는 ‘재(載)’, 재의 만 배는 ‘극(極)’이라고 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극의 억 배가 되는 수를 ‘항하사(恒河沙)’ 라고 한다. 즉, 모래알처럼 많다는 뜻이다. 항하사의 억 배를 ‘아승기(阿僧祇)’, 아승기의 억 배를 ‘나유타(那由他)’, 나유타의 억 배를 ‘불가사의(不可思議), 불가사의의 억 배를 ‘무량수(無量壽)’라고 한다.

    우리가 칭찬할 때 “참 잘 했어요!” 라고 표현하는 ‘잘’은 어느 정도의 칭찬일까? 억은 0이 8개이고, 잘은 0이 40개나 되는 ‘정(正)’에 해당하는 수로 소름이 끼칠 정도의 칭찬의 표현이다. 이 엄청난 수의 세계를 알고 나면 백년도 채우지 못하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알 수 있고, 1년이란 세월은 눈 깜짝하는 순간에 불가할 뿐이다.

    이 무변광대(無邊廣大)하고 무량대수(無量大數)의 기나긴 시간 속에 찰나 같은 시간을 왔다가 가는 인생은 너무나 초라하고 허무할 뿐이다.

    이토록 촌각(寸刻) 속에서 살다가는 우리네 인생일지라도 그 속에서 참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의 철학이요, 진리인 것이다. 우리의 만남이 소중한 이유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특별히 부부의 만남은 귀하고도 소중한 인연으로 감사하며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부의 인연은 과연 얼마의 숫자일까?

    힌두교에서 말하기를 1겁(劫)은 43억 2천만년의 세월이라 하니 상상(想像)이 불가(不可)하다. 이렇듯 끝이 없는 숫자와 시간에 대한 개념을 알고 보니 ‘인간백세(人間百歲)’의 삶은 한낱 먼지 한 톨만큼도 아닌 그저 작아지고 또 작아질 뿐이다. 이토록 짧은 한 번의 삶이 세월과 화합하고 사랑하고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당연한 권리와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태양(太陽)은 늙지도 쉬지도 않고 떠오르는데- 어찌하여 찰나(刹那)의 이 한 평생을 허무(虛無)하게만 살다가 떠날 것인가?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인간본연(人間本然)의 가야할 길을 잃고 사상적(思想的) 심(深)한 중병을 앓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사람을 쫓는 인간 사냥 덫과 같은 작금의 사회현상은 안타깝고 슬픈 자화상(自畵像)으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동물세계와 다를 바 없다.

    전생(前世)에 무슨 한(恨)이라도 서린 것인가! 개혁이라는 미명(美名)하에 백년도 아닌 천년을 살 것처럼 꼴 사납게 설치며 찌지고, 볶고, 투쟁하는 망상증(妄想症)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둠의 장막(帳幕)에 갇힌 채 허송세월만 흘러가고 있다. ‘인지수경(人之水鏡)하고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자기의 재능을 감추고 세속과 어울리지 못하면 먼지만도 못하다고 했다.

    국내외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금년도 몇 날이 남지 않았다.

    태양이 뜨는 병오년(丙午年) 첫날 새해부터는 한 시대의 연(緣)의 공동체로서 우리 모두가 동행하는 생(生)의 기쁨을 얻어 만끽(滿喫)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것은 생명을 중시하는 공동체요 필연적 소망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우리 모두가 생명을 주신 창조주(創造主)의 섭리(攝理)에 감사하고 질서에 순응하는 도리를 감당할 때 진정하고 값진 축복을 얻어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 시대의 동반자로서 바라건대-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면서 한 번의 생애(生涯)를 꽃밭처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삶의 터전(攄田)이 되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랑하지도 않고 감사하는 덕성이 없으면 축복받는 생애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인생인가?

    병오년 새해는 우리 모두의 삶이 풍요롭고 기쁨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논설위원 정 용 구

     

  • 글쓴날 : [25-12-16 09:41]
    • 시민신문 기자[cityne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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